80년간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를 소유했던 그레이엄 가문 출신의 랠리 웨이머스 전 WP 수석 부편집장이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2세. 사인은 췌장암이다.



2012년 워싱턴포스트 행사에 참석한 랠리 웨이머스. WP 캡처


웨이머스는 1943년 필립 그레이엄과 캐서린 그레이엄의 3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파산 직전의 WP를 1933년 경매로 사들인 외할아버지 유진 메이어는 웨이머스가 3살때인 1946년 그의 아버지에게 회사를 물려줬다. 이후 어머니 캐서린, 첫째 남동생 도널드, 딸 캐서린 웨이머스까지 그레이엄 가문은 WP가 2013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에게 매각되기 전까지 4명의 발행인을 배출했다. 웨이머스는 집안에선 유일하게 경영에 발을 들이지 않고 취재 활동과 인터뷰에 전념하며 언론인으로서 경력을 쌓았다.
래드클리프대(1999년 하버드대에 통합)에서 미국사 와 문학을 전공한 웨이머스는 처음에는 뉴욕 매거진 등의 언론사에서 프리랜서 기고가로 활동했다. 그는 2011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WP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제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웨이머스는 43세 때인 1986년에야 WP에 입사했다. 당시 그의 남동생인 도널드가 발행인을 맡아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고, 어머니 캐서린은 그레 이엄 가문 일가의 WP 합류를 최대한 줄이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국제 문제와 외교 분야에 집중하는 칼럼을 써온 웨이머스는 1980년대 들어 각국 정상들에 대한 독점 인터뷰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1982년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퍼레이드 매거진), 1985년 헬무트 콜 독일 총리(로스엔젤레 스타임스)를 잇따라 인터뷰했다. 그는 그레이엄 가문 일원으로서 언론사와 정치권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1976년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부유하게 자란 것에 단점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스스로 그것을 문제로 여기든지, 아니면 엄청난 이점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라고 말하는 방법이 있다”고 답한 바 있다.



2019년 2월 21일 미국 워싱턴DC의 다운타운에 있는 워싱턴포스트 본사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때로는 독재자와 마주 앉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웨이머스는 1984년 미국 언론인으로선 처음으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2002년엔 리비아의 사막 텐트에서 국가 지도자인 무아마르 카다피도 만났다. 이에 앞서 1998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선 “왜 신문들을 폐간시키느냐”며 그의 언론사 강제폐쇄조치에 대해 따져 묻기도 했다. WP 내부에선 “영리한 질문으로 이끌어낸 지도자들의 답변을 여과없이 들을 수 있는 기회”라는 평가가 나왔다.
웨이머스는 WP에서 수석 부편집장까지 승진했다. 그레이엄 가문이 소유한 또다른 매체인 뉴스위크가 2010년 매각되기 전까진 외교전문기자 직함도 갖고 있었다. 웨이머스는 2017년 6월 청와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인터뷰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정말 미친 것인가 아니면, 영리하게 핵을 잘 개발하고 있는가”라며 평가를 묻기도 했다. 웨이머스는 최근까지도 1년에 네 다섯 건의 인터뷰를 이어왔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기자 admin@reelnara.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