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림 기자]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는 혼자 걷지 못한다. 엄마는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아빠는 네 바퀴 달린 유모차를 밀며 나선다. 돌이 지나면 아이는 두 발로 걷기 시작한다. 아직 중심을 잘 잡지 못해 무릎 보호대가 필수다. 두 돌 무렵엔 뛰려다 자주 넘어진다. 코가 깨지고 이마에 멍이 들어도, 타고난 질주 본능은 멈추지 않는다.
세 돌이 되면 두 발로 자유롭게 걷고 뛴다. 그가 뛰는 모든 곳이 새로운 땅이 된다. 네 살쯤엔 킥보드를 타며 속도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섯 살, 자전거로 갈아탄다. 균형 잡기는 어렵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두 바퀴
골드몽릴게임 를 굴리며 시야를 높인다.
하지만 엄마가 라이딩(riding)을 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두 발과 두 바퀴는 사라진다. 아이들의 진로방향키는 엄마의 핸들에 달리게 되고, 아이들은 앞자리 혹은 뒷자리에서 그걸 당연히 여기게 된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나는 사실 '라이딩맘'은 되고 싶지 않았다.
유치
카카오야마토 원, 라이딩의 시작
▲ 워킹맘의 애환을 다룬 ENA 드라마 <라이딩 인생> 예고 영상 중 일부
우주전함야마토게임ⓒ ENA 유튜브 캡처
우리 아이는 곧 여섯 살이 되어 유치원에 간다. 도보로 갈 수 있었던 단지 내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차로 15~20분 정도 거리의 유치원을 가야 한다.
모바일바다이야기 11월 휴가를 내고 유치원 설명회에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만났다. 바로 셔틀 운행 시간. 안 그래도 유치원 버스를 아침에 태우고, 퇴근 후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기다려야 하는 게 걱정이었다. 하지만 간당간당한 시간을 걱정했을 뿐, 시간의 선택권이 아예 없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유치원은 오전 7시 30분~저녁 7시 정도까지 운영을 한다. 하지만 첫 셔틀버스는 보통 8시 30분 정도부터 운영이 되고, 마지막 셔틀버스는 유치원에서 오후 4시 50분에 출발한다고 한다.
물론 셔틀버스 운영시간은 유치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기다려주는 셔틀버스는 없다. 오후 5시 이후에 아이를 픽업해야 하는 경우는 엄마아빠가 직접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뜻. 매일 회사로 출퇴근하는 것만큼, 또 매일 유치원으로도 출근 혹은 퇴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후 4시 50분이 마지막 셔틀이라고요?"
나는 다시 한번 질의응답 시간에 물었다.
"어머님~ 저희가 더 늦게 운영하고 싶어도 운전기사님들이 아침부터 워낙 오래 근무하시다 보니까 어쩔 수가 없어요."
비자발적으로 '라이딩맘'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 건가? 순간 머리가 띵했다.
어쩌면 아이가 어리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퇴근길을 20분 정도 더 연장하는 셈 치자고 보면 말이다. 본래 내 퇴근길이 40분 정도이니, 유치원을 경유해 아이를 픽업하면 약 1시간 정도로 늘어날 예정이다.
들어보니 회사 후배네 동네에선 500미터 거리의 국공립 유치원을 두고, 차로 30분씩 걸리는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매일 자발적으로 라이딩을 해주는 엄마들도 있다고 한다.
대치동만의 이야기?
'라이딩맘'은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녀의 학교 → 학원 → 학원 → 귀가까지의 이동·대기를 아예 차량으로 따라다니는 형태를 일컫는다. 특히 대치동과 같은 한국의 사교육 집중 지역에서 엄마들이 아이를 학원까지 차량으로 데려다주고 밤늦게까지 대기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었다.
최근 이런 라이딩맘을 표현한 개그우먼 이수지의 '제이미맘'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대치맘(대치동 엄마)을 패러디하여 아이를 라이딩하고, 사교육에 올인하는 모습이 리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배우 한가인씨도 유튜브를 하며 초창기에 라이딩맘의 하루 일과를 공개한 적도 있다. 오전 7시 반 첫째 딸을 학교에 보내고, 저녁 9시 첫째 딸의 수학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 일정이었다. 저녁에는 아이를 기다리며 차에서 배달도 시켜 먹어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긴 하루 동안 강북에서 강남으로 넘어가는 한남대교를 하루에도 수차례 건넜다.
그런 라이딩맘들이 한둘은 아니기에, 이런 자조 섞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럴 거면 대학교는 왜 갔을까.""내가 가진 능력 중 최고는 운전이다."
나는 라이딩맘이 되고 싶지 않았다
▲ 어린이 통학버스들
ⓒ 연합뉴스
나는 아이가 고등학교를 가더라도 라이딩맘만은 하지 않겠다 생각했다. 아이의 학습을 위해서가 아니라, '걷는 시간'까지 대신해 주는 게 과연 옳은가 싶었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야자 후 집까지 스스로 걸어왔던 세대다. 그 시간 속에서 혼자 생각했고, 때로는 울었고, 그렇게 단단해졌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엄마의 차 안에서만 이동한다. 이동의 시간조차 '보호'라는 이름으로 관리된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의 시간과 동선이 부모의 손에 의해 완전히 대체되었다. 마치 다시 유모차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그래서 나는 아이의 성적을 위해 차를 몰고 싶진 않았다. 나는 그저 나의 일과 아이의 성장과정을 균형 있게 병행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고작 6살 유치원 입학 신청서를 받아 든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의 작은 사상이나 빈곤한 철학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현실을 말이다. 이건 학습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유치원 셔틀버스 시간표가 애초에 워킹맘이나 워킹대디에게 맞지 않을 뿐이었다.
"셔틀버스는 오전 8시 30분에 출발합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정시에 출발하니 5분 전에는 나와 계셔야 합니다. 마지막 하원 셔틀은 오후 4시 50분입니다. 그 이후 하원을 원하시는 경우에는 보호자께서 직접 유치원으로 픽업 오셔야 합니다."
내 정규 출근시간은 9시다. 아이를 8시 25분에 셔틀버스에 태우고 9시까지 출근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퇴근시간은 6시. 오후 4시 50분에 집 앞에 도착하는 셔틀버스를 맞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셔틀버스 운전기사님도 하루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말에 당연히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맞벌이 부모는?
우리는 유치원 시간표에 맞춰 우리의 근무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아니면 라이딩맘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유치원 선택기준에 '주차의 편의성'도 들어간다. 픽업하러 갈 때 평행주차가 많은 유치원이나 주차장이 협소한 곳은 매일 아이를 픽업하러 갈 때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학원 때문에 라이딩을 하는 게 아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차를 모는 게 아니다.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영어학원을 돌리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게 아니다. 나는 그저 워킹맘으로서, 아이를 유치원 셔틀버스에 태우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서 직접 라이딩을 하러 가는 것이다.
구조가 만든 비자발적 라이딩맘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맞벌이 부부들은 선택지가 좁다. 미취학 아동일 때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등하원 시간, 셔틀버스 시간, 연장반 아이나 담임의 수 등을 모두 고려해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입학한 이후부터는 방과 후 수업시간, 학원시간, 집과의 이동거리, 직장 출퇴근 시간과 이동거리 등으로 계산기 주판이 바뀐다.
통계청에 따르면 18세 미만 자녀를 둔 맞벌이 가구 비율은 58.5%. 그중 6세 이하 자녀를 둔 가구만 따져도 절반이 넘는다. 그런데 유치원 시간표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워킹맘의 하루는 그 틀 안에서 늘 비어 있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게 '라이딩맘'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유치원이 '교육기관'이라면, 교육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모든 라이딩맘이 '대치맘'은 아니다. 그저 구조가 워킹맘을 자발적이지 않은 라이딩맘으로 만든다.
워킹맘의 수업료는 학원비가 아니라, 시간과 선택의 여백이 사라지는 대가다.
덧붙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