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제주시 이호태우 해안가에서 제주시니어클럽 어르신들이 쓰레기를 수거하며 해변 정화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


제주 이호태우 해안가에는 최근 아침마다 노인들이 형광 조끼를 입고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다. 바람이 세찬 날이면 밀려온 폐어구와 플라스틱병이 발끝에 차이지만 이들은 미소를 띠며 손을 멈추지 않는다.
모두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음일자리 사업의 ‘환경보전활동’ 참여자들이다.
이들이 소속된 제주시니어클럽의 환경보전활동팀은 45명이 4인 1조로 꾸려졌다. 해안가, 오름, 곶자왈 등에서 불법 쓰레기와 외래식물을 수거하며 탐방로를 관리한다. 단순한 환경정화가 아니라 지역 생태를 보전하는 일이다.
올해 처음 일자리에 참여한 강창인(65) 씨는 해양수산부에서 퇴직한 뒤 사회활동을 이어가고 싶었다고 했다. 강 씨는 “집에서는 건강을 잘 못 챙기는데 밖에 나와 일하면서 걷다 보니 장단지가 딴딴해졌다”며 웃었다. 그는 “이게 노인일자리의 장점 같다. 이런 일자리가 더 번창해서 전국적으로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조에서 활동하는 김경윤(64) 씨는 반장이다. 5개월째 이음일자리에 참여 중인 김 씨는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면 정기적으로 출퇴근하게 되잖아요. 모르는 사람 만나서 얘기도 하고 산책 겸 일도 하 니까 좋다”며 “용돈도 벌어오니까 마누라도 좋아한다”고 했다.
전화국에서 일하다 10년간 쉬었다는 이순여(75) 씨도 활기가 넘쳤다. 이 씨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자리가 주어진다는 게 행복했다”며 “용돈이 생기면 손주들한테 과자라도 사줄 수 있고 집에만 있을 때보다 훨씬 활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6일 제주시 저지오름에서 느영나영복지공동체 어르신들이 환경보전 인식 캠페인 부스에서 방문객들과 ‘버튼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노인인려개발원


이음일자리 사업은 JDC가 한국노인인력개발원·노사발전재단과 함께 추진하는 사회공헌형 일자리다. 단순 근로를 넘어 노인의 경력과 역량을 지역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참여자는 230명으로, 이 가운데 200명은 60세 이상이다.
이 사업은 ‘환경생태보전’, ‘나눔배움지원단’, ‘이음서포터즈’ 세 가지로 운영된다. 환경보전활동 외에도 노인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지역 사회에 나누거나, 사업의 성과를 홍보하는 역할도 맡는다.
이를 통해 단기 일자리로 끝나지 않고 민간 취업이나 사회참여로 이어지도록 돕는 경로 중심형 모델로 설계됐다.
느영나영복지공동체가 맡은 저지오름 현장에서도 참여자 황성윤(69) 씨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밀감 농사를 짓다 은퇴한 그는 이 사업을 통해 환경관리사 1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느영나영복지공동체의 환경보전사업에는 80명이 참여해 3인 1조로 활동 중이다. 오름과 곶자왈의 유해식물 제거, 환경캠페인, 대형 폐기물 모니터링 등도 맡고 있다.
황씨는 “남에게 좋은 인식을 주고 더 오래 일하고 싶다”며 “쓰레기 하나를 주워도 자연에 보탬이 된다는 게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인일자리는 내게 건강과 새로운 삶을 준 제2의 전환기”라고 덧붙였다.



6일 제주 서귀포시 화순 곶자왈에서 서귀포시니어클럽 어르신들이 외래식물 ‘왕도깨비가지’를 제거하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서귀포시 화순 곶자왈에서도 같은 사업이 한창이다. 서귀포시니어클럽 소속 문병식(73) 씨는 농협에서 은퇴한 뒤 농사를 지으며 지냈지만 다시 일하고 싶어 참여했다.
문 씨와 동료 20명은 4인 1조로 나뉘어 왕도깨비가지와 가시비름 같은 외래식물을 제거하고 있다. 최근엔 드론을 활용해 외래종 발생 지역을 탐색하고 송악처럼 토종 나무에 기생해 해치는 식물도 함께 제거하고 있다.
문 씨는 “유해 외래식물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하면서 보람을 느낀다”며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겠냐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조홍영 노인인력개발원 홍보기획부장은 “이음일자리 사업은 단순히 노인 일자리 창출에 그치지 않고 참여자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고 지역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모델”이라며 “민간 취업과 사회참여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곶자왈의 숲길과 해안선이 조금씩 깨끗해지는 만큼 노인들의 삶도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다. 손에 장갑을 끼고 낡은 집게를 쥔 이들의 발걸음은 느리지만 단단하다. 쓰레기 한 조각을 주울 때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숲에 바람이 스치면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서로 웃는다.
누군가는 오랜만에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생겼고 누군가는 새로 만난 동료 덕에 하루가 덜 외로워졌다. 그들의 하루는 봉사이자 일이고 또 작은 행복의 기록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