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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12일 이스라엘 남부 아슈도드에서 주민들이 총격으로 사망한 미국 극우 활동가 찰리 커크의 추모 벽화를 바라보고 있다. EPA 연합뉴스


미국 전역에서 전운이 감돈다. 선전포고의 명분은 청년 극우 활동가의 죽음이다. 교전 상대방은 ‘급진 좌파’다. 미국 사회가 극단적 ‘이념 전쟁’으로 빨려들고 있다.
2025년 9월10일 낮 12시께(현지시각) 미국 유타주 오렘에 자리한 유타밸리대학에 3천여 명이 몰렸다. 청년 극우단체 ‘터닝포인트 유에스에이’(이하 터닝포인트)가 주최한 ‘미국 귀환 투어’가 한창이었다. 행사 시작 20분이나 지났을까? 천막을 친 연단에 앉은 이 단체 찰리 커크 대표는 행사에 참석한 학생과 총기 난사 사건 시중은행금리인하 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저지른 성전환자(트랜스젠더)가 몇 명인지 아세요?”(학생)
“너무 많죠.”(커크 대표)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이 몇 건이나 되는지 아세요?”(학생)
“갱단이 저지른 사건도 포함할까요, 말까요? 카드대금결제 ”(커크 대표)
갑자기 커크 대표가 목을 붙잡았다. 곧 피가 쏟아져 나왔다. 사태를 파악한 청중이 몸을 낮추고 사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다. 병원으로 이송된 커크 대표는 이날 오후 숨을 거뒀다. 향년 31.
오바마가 대통령 되자 본색 드러낸 10대
찰스 제임스 커크는 1993년 1 한부모가정혜택 0월14일 일리노이주 시카고 외곽 알링턴하이츠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건축가인 아버지는 주로 고급 주택 공사를 하는 건축회사를 운영했다. 시카고상업거래소 중개인 출신인 어머니는 심리상담사로 전직했다. 그의 부모는 장로교도이자 온건파 공화당원으로 알려졌다.
2008년 청소년 커크의 앞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두 가지 사건이 벌어졌다. 대구한복대여 한올명주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미국발 금융위기와 시카고를 무대로 성장한 정치인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다. 부동산 위기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 타격을 줬다. 커크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이 달갑지 않았다. 일찌감치 정치에 관심을 둔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허핑턴포스트의 극우 버전’으로 불린 브라이트바트에 기고문을 실었다. 교과서에 만연한 ‘진보적 이 직장인 적금 추천 념 세뇌’를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이 글이 화제가 돼 그는 폭스뉴스와 첫 인터뷰를 했다.
커크는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진학을 원했지만 떨어졌다. 그는 자신보다 못한 지원자가 ‘다양성’을 이유로 합격했다고 불평했다. 1960년대 민권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소수자 우대법’(어퍼머티브 액션) 탓에 역차별을 당했다는 주장이다. 이 무렵 그는 60대 극우 활동가 빌 몽고메리와 함께 터닝포인트를 설립했다. 그는 지역 전문대학 하퍼칼리지에 진학했지만, ‘정치활동 전업’을 결심한 뒤 한 학기 만에 자퇴했다. 2025년 9월 현재 터닝포인트는 미국 전역 2천여 고교·대학교에 지부를 두고 있다.



2025년 9월11일 극우 활동가 찰리 커크가 총격으로 숨진 유타주 오렘에 마련된 약식 빈소 앞에서 주민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5년 9월11일 극우 활동가 찰리 커크가 총격으로 사망한 유타주 오렘의 한 교회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으로 공화당 내부에서 풀뿌리 극우세력 티파티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지던 때다. 커크는 티파티 행사를 중심으로 전국을 돌며 강연회와 토론회에 참여했다. ‘성난 백인 청년’을 대표하는 그의 지명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티파티는 정치 신예 도널드 트럼프와 만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마가) 운동으로 진화했다. 커크는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후보 선거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커크는 성소수자를 증오하고 정교분리를 비난했다. 극우 복음주의 진영이 젊은 그에게 열광한 이유다. 미국 수정헌법 제2조는 “잘 훈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커크는 “신께서 주신 수정헌법 제2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안타깝지만 총기 사고 사망자란 약간의 비용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유대인 혐오하면서 이스라엘은 지지
커크에게 민권법은 ‘백인을 겨냥한 무기’이자 ‘미국을 파괴하는 주범’이었다. 그가 민권법 통과를 주도한 미국 인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집요하게 비난한 이유다. 그는 민권법에 따라 인종·종교·성별·피부색·출신국가 등에 따른 차별을 막고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양성·공정성·포용성’(DEI) 정책도 혐오했다. 커크는 “흑인 조종사를 보면, ‘저 자식이 조종사 면허증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는 발언을 남겼다.
미국 보수 진영이 대체로 친이스라엘·친유대인 성향을 보이는 것과 달리, 커크는 ‘반유대주의자’로 통했다. 그는 “유대인들이 ‘백인의 미국’을 비백인 이민자로 대체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또 조지 소로스 등 유대계 억만장자들이 ‘블랙 라이브스 매터’(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등 백인에 적대적인 활동을 지원·조장한다고 비난했다. 정작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선 전폭 지지했다. 커크의 죽음 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사자의 심장을 지닌 이스라엘의 친구”라고 애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무슬림인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후보(민주당)를 두고는 “9·11 테러를 저지른 사악한 세력이 이제 지방정부를 장악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2025년 9월11일 미국 백악관에 극우 활동가 찰리 커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조기가 걸려 있다. AP 연합뉴스


터닝포인트는 진보 이념으로 찌든 대학가에서 우파 청년을 위한 ‘표현의 자유 수호자’를 자처한다. 자기 단체의 강연회를 금지·취소한 대학에 대해선 표현의 자유 침해를 이유로 소송전도 불사한다. 그러면서 진보적 발언을 한 교수 명단을 수집·공개하는 ‘교수감시목록’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고 있다. 커크는 기후위기에 대해선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미국 극우 진영의 총아이자 젊은 이데올로그였다.
트럼프, 조기 게양 명령하고 국민 갈라치기
9월10일 오후 커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령을 내려 9월14일 일몰 때까지 미국의 모든 공공기관과 군부대에 조기 게양을 명했다. 커크의 추천으로 일약 트럼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된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유타주로 날아가 그의 관을 직접 운구했고, 공군 2호기(부통령 전용기) 편으로 장례식이 열리는 애리조나주로 옮겼다. 9월11일 커크의 살해범이 체포됐다. 22살 백인 청년 타일러 로빈슨이다. 로빈슨은 범행 직후 성전환 중인 연인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커크의 증오를 더는 참을 수 없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급진 좌파가 미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고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16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에 반대하면 누구든 ‘급진 좌파’가 될 수 있다. 전날엔 커크가 진행하던 ‘찰리 커크 쇼’를 백악관에서 대신 진행한 밴스 부통령이 “급진 좌파 미치광이를 단속하겠다. 폭력을 조장하는 시민단체 네트워크를 추적·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크의 죽음을 두고 “증오를 부추긴 본인 탓”이란 식의 의견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공무원과 직장인이 줄줄이 해고되고 있다. ‘극우의 성인’이 된 커크를 앞세워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