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서의 둘째 주일
김호수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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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5 09:26
(사진에서 위에 있는 제일 밝은 건물이 왕궁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 사진은 제가 사는 숙소를 찍었습니다.)
요-렉게르트! (좋은 아침!, 아침인사)
요-너포트! (좋은 오후!, 점심 인사)
쾨쇠뇜. (감사합니다.)
케-렘.(천만에요)
비손트라-타-쉬러.(안녕히 계셔요/가세요)
몇개의 헝가리어를 외우며 네비게이션을 켜고 교회를 갔지만 두어시간 헤메고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임종주 형제가 2주정도 휴가로 한국에 가게되서 미리 교회주소를 물어두었는데, 주소가 잘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부다페스트(헝가리 수도)의 라지마뇨쉬(최종 도로이름)에 있다고 들었는데, 적어준 주소는 근처의 다른 도로명이었습니다. 처음 갈때 잘 봐뒀어야 했는데, 동네에 가서도 찾지를 못했으니..
숙소에 들어와서 구글 위성지도를 한참 봐서야 여기 주소체계가 도로명으로 되어있고, 한인교회가 헤맸던 동네에 있는데도 못찾은걸 알게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나라에 너무 무관심했던거 같습니다. 이제야 헝가리어로 인사말을 외우고 있으니..
요즘 읽고있는 [2008 가정예배서 하늘양식]에서 선교사에 대한 내용이 있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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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서 내려 한강 쪽으로 100m쯤 내려와 길을 건너면 "서울 외국인 묘지"라는 표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은 118년 전 이 땅에 복음의 씨를 뿌렸던 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묘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묻힌 선교사 중 켄드릭(1883~1908)은 1907년 10월에 개성에서 사역을 시작하여 1908년 6월 급성 맹장염으로 하늘나라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헌신적으로 일하였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만일 내게 일 천 생명이 있다면 그것을 모두 조선에 주겠노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 묘비를 세운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텍사스 엡윗청년회의 후원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 비석의 글은 그녀가 죽기 하루 전에 이곳에 보낸 편지 중 한 구절이 라고 합니다. 이 편지를 받았을 때 엡윗청년회는 마침 연합대회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자신을 불사르고 있는 그녀의 소식은 대회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그녀의 죽음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참석자들은 슬픔에 젖었습니다. 대회 분위기가 침체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역사를 이루어 내셨습니다. 참가자 중에 20명이나 되는 사람이 선교사로 지원한 것입니다. 이 후 텍사스 엡윗청년회는 해마다 헌금을 하여 한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생활비를 보조하였다고 합니다.
켄드릭 선교사의 묘 앞에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녀의 조선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배출하는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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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인교회 목사님도 이십여년 전에 안정된 교사 직업과 가정을 놔두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공산주의였던 이 헝가리에 선교사로 오셨다고 하니 웬지 숙연해집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복음에 빚진 자"이기 때문에 믿지않는 자에게 빚을 갚기를 원하여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롬 1:14-15]
라고 했는데, 성경말씀을 실천하는 분들을 뵈니 자기 성찰이 저절로 됩니다.
주님! 믿음의 선배들을 많이 주셔서 쾨쇠뇜!
댓글
주님사랑
좋은 소식..
그리고 먼곳에서도 홈피를 방문하시고 사랑해주심 감사드립니다.
건강하게 일 잘보고 돌아오십시요
은혜성산 가족들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화이팅~~